"요 단 강" 으로 내려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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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98회 작성일 20-05-01 04:46본문
우리 사는 동안, 잠시 뒤를 돌아 본다면 그 누구든지 올라 갈 때가 있었고 내려갔을 때도 있다.
오르고 내림 속에서 힘이 든 때는 언제였던 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내려갔던 길이 올라갔던
길 보다 더 힘이 들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힘은 사실, 오를 때가 더 힘들었지만 그럼에도 즐거
움이 있었기에 어려움을 곧 잊어 버린 것이다.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실 때, 세례 요한으로 부터 받으셨다. 요한으로서는 감당키 어려운 황송한
일이었지만 주님은 당신의 뜻을 요한에게 관철 시킨 것이다. 세상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
회는 계층-구조로 짜여져 있고, 그럼에도 그것이 정상이고 예절이다. 학교, 회사, 관청을 막론
하고 이 서열[?]이 엄격해서 좀처럼 이러한 질서를 타파하려고 하지 않는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턱 밑으로 내려가셨다. 게다가 그로부터 세례를 받으셨다. 그리하여 주
님은 주님을 따르는 모든 이들로 하여금 "작은-낮은 자의 자리"로 선선히 내려 갈 줄을 아는
지혜와 결단과 아량을 배우도록 하셨다. 요단강으로 "내려가신" 주님을 바라보자! 그리고 그의
발자취를 우리 모두가 함께 따르자. 주님의 자리를 다시 한번 더 눈 여겨 살펴 보자!
1]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의 자리로 가셨다.
예수님께서는 간음 행위를 한-현장에서 부터 붙잡혀 온 여인과 같은 위치에 서 계셨다. 부패한
종교인, 위선자들, 율법을 잘 지킨다고 스스로 떠들던 소위, 바리새인들과 사두개파 사람들로
부터 오히려 냉대를 받으셨으며, 심지어 죄인으로 취급 받기 까지 하셨던 것이다. 교회에서도
죄인의 자리로 내려 갈 줄 아는 이들이 있어야 한다. 낮은, 그 자리는 어제의 나의 자리였으며
예수님으로 부터 죄로 물들었던 나 자신이 발견되고 부름을 받은 자리였던 것이다.
2] 예수님 께서는 죽음의 자리로 가셨다.
우리 모두가 받는 세례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인간이 범죄 한 옛 것[죄]에 대한 죽음이
요, 다른 하나는 새 것에 대한 삶이다. 하지만 주님께서 직접 받으신 세례의 의미는 다르다. 주님은
하나님으로서, 죄가 없으시기에 죽어야 할 옛 것이 없으시고, 예수님께서 곧 의가 되시니 새삼스
럽게 살리셔야 할 것도 없으시다. 예수님께서 요단강에 내려가셔서 세례 받으심과 [처음] 또 십자
가에 달려 죽으심으로써-우리에 대한 사랑과 헌신 그리고 우리의 죄를 도말하시려는 예식이셨다.
죄인 된 우리를 구원하심에 있어 반드시 필요한 "대속의 희생 제물"이 되시기 위한 "낮아지심 과
죽으심"이신 것이다.
3] 주님,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원하시는 바가 있으시다.
간략하게 요약을 한다면
1. 주님을 믿고, 주님의 뜻을 따르는 자가 되어야 한다.
2. 주님의 사랑을 알고, 그 사랑을 실천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며
3. 주님의 그 크신 사랑과 구원의 소식을 세상-끝까지 전파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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