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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니즘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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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ychang 댓글 0건 조회 122회 작성일 18-08-26 0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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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ive Points of Calvinism

 

         교회역사와 교리를 공부하다 보면 가끔은 인간이 역사를 만들어 가기보다 한 시대의 특별한 시대적 배경이나 환경이 한 인물을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간혹 하게 됩니다. 교리는 그 시대적 배경과 떨어져서 이해하기 힘든 부분입니다. 독일에서 태어났으며 기독교 종교계획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인 말틴 루터(1483-1546) 가 주장했던Sola fide (라틴어: 오직 믿음으로) 곧 믿음과 칭의 모두가 하나님의 사역으로서 죄인들에게 값없이 주어지는 공짜선물(Free Gift)이라는 이 루터 신학도 단지 로마 교황청의 부정 부패를 지적했다기 보다는 그들이 가르치고 있는 교리의 모순을 적면으로 지적하는 것이기에 로마 교황청의 교리의 이해를 건너 띄고 루터의 신학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왜냐면 그토록 필요하였던 종교 개혁은 루터 개인의 의지도 있지만 사실 때가 찼으므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프랑스에서 태어난 죤 칼빈(1509-1564)이 사망한지 73년 후인1619년에 제 정립된 칼빈주의 5대 교리 역시 알미니우스주의 이해가 형성되지 못한 상태에서는 칼빈주의 5대 교리를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칼빈주의 5대 교리는 역시 알미니우즈주의를 반박하기 위해 확정된 도르트 총회 (The Synod of Dort)의 결의문이기때문입니다.       

         아주 짧게 알미니우스주의를 설명하자면 16세기의 가장 중요한 프로테스탄트 신학자 루터와 칼빈이 사망한후 그 들을 따르던 추종자 2세들 가운데 분열과 Sub divisions이 발생됩니다. 이 분열가운데 루터주의 추종자들은 “Lutheran”이라는 명칭으로 불리우기 되고요. 루터의 성찬에 관한 이해와 가장 중요한 차이점을 가지고 있었던 자들은 “칼빈주의자,” 또는 “개혁파 (Reformed)” 라는 명칭으로 불리우기 시작합니다. 시간이 지나 네델란드 일대에서도 나머지 유럽과 마찬가지로 일찍부터 프로테스탄주의가 들어가지만 교리에 대한 갈등과 분열 또한 피해갈수 없었습니다. 이런 분열속에 17세기 초 홀란드의 뛰어나 목회자이자 교수였던 야코부스 알미니우스 (Jacobus Arminius)가 칼빈주의에 입각한 신학 교육을 받은 이후 제네바에서 홀란드로 돌아갑니다. 그가 돌아온 후 암스탤담의 강단에서 행한 설교를 통해 많은 사람들의 인정을 받은 후에 이러한 그의 명성 때문에 당시의 암스텔담의 교회 지도자들의 많은 압박을 받게되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힘겨운 신앙적 갈등중에 코브스 알미니우스는 예정론을 부인하는자로 자신의 뜻을 굳건히 세움으로써 Double - predestination을 주장하는 칼빈주의 와 정면으로 충돌할 수 밖에 없습니다.  칼빈주의의 중심사상은 예정론이기보다 하나님의 주권에 있는 반면에 알미니우스주의는 인간의 자유의지(Free Will)를 강조한 것이 가장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610년 알미니우스파들은 그들의 신학적 견해를  5개 조항으로 아래와 같이 정의 했습니다.

      알미니우스주의 의 5개 조항 (1610)                     이를 반박하기 위해 확정된 결의문 (1619)

 

Ability to repent      (인간의 자유의지)                            Total Depravity      (인간의 전적 부패)

Conditional election (조건적 선택).                                 Unconditional Election   (무조건적 선택)

Universal atonement (보편적 속죄)                                 Limited atonement       (제한적 속죄)

Sinners may successfully resist (저항할 수 있는 은혜)            Irresistible Grace          (불가항력적 은혜)

Apostasy can be possible (성도의 견인의 불확실성)               Perseverance of Saints  (성도의 견인)

 

         이 알미니우스주의가 항의한 5개의 항목에 대해 반응하여 개혁주의 전통 역시 그 후 정통으로 받아들여질 신학을 정립할 수 밖에 없습니다. 결국 칼빈주의5대 교리 (The Five Points of Calvinism, TULIP)는 개혁파주의의 분열 중에 정면으로 칼빈주의 정면으로 맞썬 알미니우스주의에 대한 반응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칼빈주의의 5대 교리를 자세히 설명하자면,

1, 알미니우스주의가 죄인은 자신의 의지 (Free Will)에 인하여 회개의 여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음을 주장하는 것 과 달리 종교회의는 그것을 받아 드리지 않고 인간의 전적 타락 (Total Depravity)을 규정 하였습니다. 이것은 비록 타락한 인간들 가운데에도 하나님의 형상의 흔적이 남아 있긴 하지만, 모든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모든 부분이 전적 (, , )으로 타락하고 부패하여 스스로의 힘으로는 절대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그 어떠한 일도 혼자서는 참여 할 수 없음 규정합니다. 이 것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식도 하나님을 떠나서 스스로 습득할 수 없음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2, 하나님은 복음에 대한 각 개인들의 반응을 미리 예지하셔서 그것에 근거해 선택과 유기를 결정하신다를 주장하는 알미니우스주의와 달리 종교회의에서는 오직 인간들이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깊으신 의지에 따라 각 개인을 구원하신 다고 규정합니다. 이것은 각 개인을 구원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의 선택은 그 어떠한것에도 영향을 받지 않은 하나님 독단적인 선택이라는 것입니다. 복음에 대한 각 개인의 반응도 그 개인을 선택하신 하나님의 선택에 아무런 공헌이 없음을 확언하는 것 입니다. 결국 내가 복음을 받아들일지 안 받아드릴지 또는 복음을 받아들인후 그 복음을 각자의 삶에서 어떻게 능력으로 나타날것인지에 대한 나의 반응도 하나님이 나를 선택하신 것에 대해 아무런 공헌을 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3, 이 부분은 예수님은 과연 누구를 위해 죽으셨다고 말할수 있는가? 라는 질문의 답변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을 위해 죽으셨다고 말하는 사람들 (대표적으로 알미니우즈주의자)이 있습니다. 반대로 그리스도께서는 선택한 사람들만 위해서 죽으셨다고 말하는 사람들 (칼빈주의자)이 있습니다.

4항에서는 하나님의 은혜는 불가항력적이라는 어거스틴과 고마루스의 결론을 알미니우즈주의는 저항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로 규정하고 강력히 거부합니다. 저항할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그들은 은혜의 작용에 관한 한, 이는 저항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많은 이들이 성령에 저항한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를 주장합니다.[1] 하지만 하나님의 은총에 대해 인간은 그것을 거부할 수도 있음 주장 하는 알미니우즈주의에 비해 종교회의가 주장하는 불가항력적 은총(Irresistible Grace)이란 하나님의 은총은 누구도 거부할 수 없음을 규정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은총을 입을 자를 부르셨을 때 그 자가 구원에 이르는 데에는 결코 실패가 없다는 사상입니다.

5,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던 자들이 은혜로부터 분리되어 떨어져 나갈 수 도 있음. 즉 신자가 배교를 할 경우 받은 은혜를 상실할 수 도 있음 (성도의 견인의 불확실성)을 주장하는 알미니우스주를 반대하며 칼빈주의자로 이루어 진 도르트 종교회의는 하나님은 구원의 은총을 입은 성도를 끝까지 견인(堅忍)하셔서 결국에는 구원에 도달하게 하신다는 것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상의 다섯 교리는 서로 분리되지 않고 논리적으로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으며 또한 튜울립 (TUPIL)” 이라는 단어를 통해 쉽게 기억하게 되었던 이 5대 교리들은 정통 칼빈주의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도르트 종교회의 직후 가혹한 처벌은 받은 반대자들 (알미니우스주의자)1630년에다시 회복되었고 후에 감리교를 비롯한 성결교, 구세군, 오순절 계통의 교단들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참고: 칼빈의 “Double Destination” 예정론은 인류가 전부 동일한 운명을 가지고 창조된 것이 아니고 누군가는 영생을 얻도록 작정되었고 누군가는 멸망되기로 예정된것을 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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